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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지난 7월15일, 윤석열 대통령이 러시아와 전쟁중인 우크라이나를 전격 방문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1억5천만달러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지원금의 용도는 대부분 비살상용 무기 지원이었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대한민국의 올바른 결정이었다.     서방세계들이 대한민국과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과 서방세계 지원정책도 거의 대부분 무기 지원이다.   윤 대통령은 귀국 후 우크라이나에서 직접 목격한 전쟁의 참상을 전하며 민간인 피해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전쟁 와중에도 천진난만하던 어린이들의 해맑은 표정과 눈빛이 아른거렸다고 한다.   전쟁 희생자중에는 어린이와 여자들이 가장 두드러진다.   대한민국도 6.25전쟁 중 부모 잃은 고아들이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이 발생해 미국 및 유럽으로 대거 입양된 기록이 있다. 한국 돈 15,000원(미화 약13달러)이면 우크라이나 어린이 한명이 한달간 먹을 수 있는 식량을 후원할 수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한국 기독교계의 거장이신 김장환 목사님(극동방송 이사장)께 직접 전화해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위한 식량 돕기 모금을 부탁하고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의 이같은 뜻에 동참해 극동방송사에서는 지난 8월 7일부터 8일까지 이틀에 걸쳐 전국 네트워크로 모금방송을 실시간 방송했다.     김동건 전 KBS아나운서가 모금방송을 진행해 이틀동안 전국 각지에서 우크라이나 천사들을 향한 온정이 답지했다. 자그마치 약 30억원의 정성이 모아졌다.   극동방송 담당자에게 모아진 성금은 우크라이나 한국 대사관을 통해 전달된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성금은 약 2십만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에게 한달치 식량을 제공할 수 있는 귀한 성금이다. 앞으로도 전 세계를 향한 한국 기독교와 각 교회들의 모금 운동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필자 역시 이 뜻깊은 모금 행사에 10,000달러를 송금하며 정성을 보태었다.   하루 속히 이 끔찍한 전쟁이 끝이 나, 공포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에게 안정과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기도 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본다.    운영위원장 극동방송 우크라이나 어린이들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 한국

2023-08-21

[기고] 테크놀로지가 바꾼 세상

크리스마스 4일 전 미국을 방문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연방의사당에서 연설할 때 가슴이 뭉클했다. 그의 건재함은 힘들고 고됐던 나날에 대한 안도감이자 새해에 대한 희망 같았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한 해는 새해를 딛는 준비 여정일 뿐이었다.   테크놀로지 덕분에 세상이 바뀌고, 그 변화의 영향이 지속될 2022년의 역사적 사건 3가지를 선정해봤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미지 생성과 챗GPT 인공지능,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파산이 그것이다.     요즘 우크라이나로 무차별 미사일 공격을 퍼붓는 러시아는 작년 2월 24일 단 한 번의 침략 준비 미팅도 없이 전쟁을 발발했다. 지금까지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패하지 않은 이유는 우크라이나인의 투지와 서방이 제공한 첨단 무기, 정확한 첩보, 전쟁 관리 소프트웨어 덕분이다. 고급 알고리즘 전쟁 시스템의 힘은 막강해서 총을 쏘는 적군에게 핵무기로 대응하는 격이다.  미국은 스타링크 인공위성 터미널 구매 비용을 지원해 우크라이나의 데이터 전쟁 토대 설립을 도왔다. 실리콘밸리의 여러 테크 회사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선을 위한 전쟁’이라고 생각해 신기술을 제공했다. 특히 팔란티어(Palantir)의 데이터 통합 소프트웨어는 수주 걸리던 전투 준비와 무기 재고 파악을 몇 초 만에 해결한다. 아마존은 우크라이나 정부와 인프라 등의 데이터를 아마존 클라우드에 올리기 위해 7500만 달러를 사용했다. EU는 센서를 이용해 공격 망을 만들고 인공지능(AI)으로 적군의 위치를 정확히 분석해 우크라이나에 알려준다.   작년 여름에 문자를 이미지로 전환하는 경이로운 AI가 여럿 탄생했다. 예술과 사기를 넘나드는 윤리적 논쟁에 휩싸였지만, AI 하나의 하루 이용자가 1000만 명이 넘는다. 오픈 AI 인공지능 연구소의 달이(Dall-E), 스테이블 디퓨젼(Stable Diffusion), 미드저니(Midjourney) 연구소의 AI들이 주인공이다. 특히 미드저니 연구소 AI가 생성한 이미지는 ‘콜로라도주 페어 미술대회’에서 디지털 아트 부문의 대상을 받아 ‘인간에 대한 AI의 승리’라는 주장도 나왔다.     11월 말 역대급으로 똑똑한 챗GPT(ChatGPT)가 출시됐다. 이에 소셜미디어에는 이용 후기와 의견들로 난리통이었다.오픈AI 연구소가 만든 챗 GPT는 머신러닝으로 훈련을 받고 독서량이 엄청나 언어, 음성 인식과 판단력이 뛰어나다. 사람같이 말하고 논쟁과 농담, 사과, 반성까지 한다. 코딩, 당뇨병 진단, 기사작성, 요리 레시피, 학교 숙제 등을 해주고 모든 질문에 답한다. 아이폰 첫 출시와 비교될 정도로 잠재력이 엄청나지만 위협감도 적지 않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암호화폐 거래소였던 FTX가 지난해 11월 11일 파산 신청을 했다. 그 뒤 한달 후 창업자이자 대표인 샘 뱅크먼-프리드가 8가지 혐의로 체포됐다. 주식과 선물 거래 규제 기관의 많은 전현직 인사들을 고문으로 고용했던 FTX의 몰락은 암호화폐의 실상이 폭로된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렇다고 디지털 화폐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암호화폐 업계의 황태자였던 30살 뱅크먼-프리드는 고객 자금으로 계열사인 ‘알라메다 리서치’ 헤지펀드의 부족한 자금 충당, 바하마에 건물 45채 매입, 막대한 정치 기부금을 썼다. ‘암호화폐가 미래의 금융’이라는 수퍼보울 광고로 작년을 시작했던 암호화폐 시장의 골드러시 분위기는 FTX 파산으로 막을 내렸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금융사기 중 하나라고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재조명한 우크라이나 전쟁, 무궁무진한 AI 능력을 보여준 챗GPT,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페에 대한 환상을 깬 FTX 파산은 테크놀로지가 바꿀 미래 모습의 서곡 같다. 테크놀로지가 윤리적으로 발전하도록 경계심을 높일 때다. 정 레지기고 테크놀로지 테크놀로지 덕분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3-01-04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젤렌스키

연말을 장식하는 시사 주간지 타임의 2022년 ‘올해의 인물’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우크라이나의 투혼(The Spirit of Ukraine.사진)’이 선정됐다.   7일 타임은 특집기사에서 “용기도 두려움만큼 널리 전파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며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의 투혼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에드워드 펠센털 타임 편집장은 “(이번 결정은) 단연코 가장 명쾌했던 선정”이라며 “(수도) 키이우를 떠나지 않고 남아서 지지를 결집하기로 한 젤렌스키의 결정은 운명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젤렌스키는 지난 수십 년간 전혀 본 적이 없는 방식으로 세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면서 “2022년 세계는 젤렌스키의 박자에 맞춰 행진했다”고 부연했다.   펠센털 편집장은 함께 선정된 ‘우크라이나의 투혼’에 대해선 “우크라이나 안팎에서 수많은 사람이 구현한 정신”이라며 이름 모를 병사들과 종군 기자들, 사람들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요리사와 의사들을 사례로 꼽았다.   1927년부터 시작된 타임의 ‘올해의 인물’은 그해 좋은 이유로든 나쁜 이유로든 전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선정된다. 지난해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2020년엔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각각 선정됐다.타임지 대통령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 안팎 타임 편집장

2022-12-07

[시론] 6·25 비극 일깨운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김일성 정권이 6·25전쟁을 일으킨 지 올해로 72주년이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넉 달째 전쟁의 포화 속에 갇힌 우크라이나 국민의 참상은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든 전쟁의 비극을 새삼 상기하게 해줬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결사 항전을 외치며 군과 민간의 항전 의지를 고양하고 있다. 서방 20여 개국은 무기 지원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돈바스 점령 지역을 확대해 가고, 수도 키이우 등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강화할 태세다. 러시아 전쟁 지도부는 국가 존립이 위태로울 경우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핵 금기 원칙을 허물고 있다.   전쟁은 참혹하다. 우크라이나 인구(약 4400만명) 중 약 700만 명이 조국을 떠났다. 러시아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영토의 30%가 황폐화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은 광범위하다. 러시아가 쏘아 올린 미사일은 단번에 ‘신냉전’의 서막을 열었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진영의 대결 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중국과 러시아는 보란 듯이 무력화하며 ‘깐부 연대’를 과시했다.   북한은 7차 핵실험 감행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러시아 흑해 함대가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려온 우크라이나의 비옥한 농업 지대를 통제하면서 아프리카와 중동 등 저개발 국가의 식량 안보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에 따른 영향으로 올 겨울 유럽연합(EU)은 물론 개발도상국에서 에너지 대란 가능성이 우려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글로벌 경제는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공급망 위기라는 삼중고에 직면하면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한국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지정학적 측면에서 한국과 우크라이나는 ‘강대국들 사이에 끼인 국가’라는 태생적 한계를 공유한다.   6·25전쟁 이후 한국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동맹을 굳건하게 발전시켰고, 마침내 세계 6위의 군사력을 건설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침탈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에 국가의 명운을 걸었다. 나토에 가입하면 확장억제력을 제공받고, 낙후한 국방력을 속도감 있게 현대화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은 혹독하면서 명료하다. 한·미 군사동맹의 결속력 강화와 독자적 국방력 발전이 핵심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심층적으로 분석해서 한·미 연합방위 태세를 강화하고 작전계획 수정, 부대 구조 및 무기 체계 최적화를 위한 다양한 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장병의 정신적 대비 태세 강화 조치도 필요하다.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과 인플레이션 압박 등 복합 위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스페인에서 열리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참석하는 역사적인 일이다. 나토는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과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심축’(Linchpin)인 한·미 동맹을 활용하려고 한다.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을 본격화하는 상징성을 갖는다. 그만큼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공고한 자리매김을 위한 전략적 접근이 중요하다.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물론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안보 협력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국익 극대화를 위한 전략적 사고와 기민한 대응이 요구되는 중요한 시기다. 두진호 /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시론 우크라이나 비극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 인구

2022-06-24

[문화 산책]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는 예술

6월 하순이 되면 나도 모르게 한국전쟁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삼팔따라지’의 자식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특히 올해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멈추지 않고,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휴전상태인데, 북한은 걸핏하면 미사일을 쏴대고, 핵전쟁 운운하는 판이니 한층 더 전쟁과 평화를 깊게 생각하게 된다.   이 무렵이면 흥얼거리는 노래가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다.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녹슨 철망을 거두고 마음껏 흘러서 가게.”   내게는 철조망이 분단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핵전쟁을 걱정하는 판에 철조망이라니…그런데도 어쩐지 철조망이 떠오른다. 그래서 얼마 전에 펴낸 내 소설집 제목도 ‘철조망 바이러스’로 했다.   얼마 전에 읽은 강맑실 대표(사계절출판사)의 칼럼이 아프게 떠오른다. ‘이 철조망들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이 칼럼은 철새인 기러기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남쪽으로 날아왔다가 가시 박힌 철조망에 걸려 피 흘리며 죽어가는 현장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죄책감으로 가슴이 옥죄어 온다고 말한다.   “차가운 바람에 팔랑이는 깃털만이 주검 대신 연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연한 혀만 들어 있던 부리는 철조망을 끊으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 피투성이가 된 채 가시 박힌 철조망을 물고 있었다. 그리고 기러기의 눈물. 모든 게 부질없다는 걸 알아차린 뒤 고통 속에서 흘렸을 기러기의 피 섞인 눈물은 길고 가녀린 고드름이 되어 바람에 흔들렸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철조망은 그렇게 무섭다. 우리 가슴 한 가운데 버티고 서있는 철조망은 더 무섭고 완고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올해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화상연설로 이렇게 호소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음악가들이 방탄복을 입고 병원에서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 폭탄이 남긴 침묵을 당신들의 음악으로 채워주기 바랍니다.”   폭탄이 남긴 침묵을 음악으로 채운다… 눈물 나는 표현이다. 이런 호소에 화답하듯, 지금 세계의 많은 예술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가능한 다양한 방법으로 전쟁 반대에 앞장서고, 평화를 기원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무자비한 폭격과 민간인 살해, 대량살상무기 사용, 강간, 고문, 부상병과 포로에 대한 적절하지 않은 처우 등… 폐허가 된 도시, 무너져 뼈대만 남은 건물, 피비린내 나는 잿더미 사이에서 울부짖는 어린이들….   그깟 예술작품에 무슨 그렇게 큰 힘이 있느냐고 되묻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술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은 성명이나 말보다 훨씬 길고 강하게 영향을 미친다. 예술은 논리를 뛰어넘어 공감시키는 능력이 크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이 모이면 막강한 힘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때일수록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평화를 기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소설가 무라카미의 말을 곱씹어본다.   “음악에 전쟁을 멈추는 힘은 아마도 없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안돼'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 예술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총과 칼을 땅바닥에 버리도록 한다.   우리가 지금 새삼스럽게 한국전쟁을 되돌아보는 것은 아픔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극복의 지혜를 찾으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뜨겁게 하나로 뭉쳐 녹슨 철조망을 걷어내 철새들이 마음껏 오가는 세상을 향해….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철조망 예술 철조망 바이러스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2-06-23

[시론] 믿지 못할 정치인들의 말

한국의 도움을 호소하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화상연설이 한국국회에서 열렸는데, 국회의원들의 참석도 저조하고 반응도 썰렁했다는 뉴스를 보고 부끄럽기도 하고, 심정이 복잡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위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택한 무기(?)는 ‘말’이었다. 절실한 진정성이 담긴 그의 연설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감동을 불러오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국, 미국, 일본, 유엔 등의 연설회에는 의원들이 자리를 꽉 채우고 연설이 끝난 뒤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유독 한국 국회에서는 반응이 차가웠다는 것이다. 한 일간지는 사설을 통해 국격(國格)을 떨어트리는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4월13일자 사설)   “우리 국회의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300명의 의원 중 60명 정도만 참석해 곳곳에 빈자리가 도드라져 보였다. 심지어 휴대폰을 하거나 딴짓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연설이 끝난 뒤 반응 또한 큰 감흥이 없어 보였다.”   국회의원이 누구인가? 다른 것은 몰라도 말 하나는 잘 한다고 뻐기는 분들 아닌가? 그 이들의 또 다른 의무는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다. 그런데 남의 나라 전쟁 이야기는 듣지 않는다? 한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의 위협 아래 놓여 있는 분단국가 아닌가?   그런 정치가들의 말을 믿어야 하는, 믿으려 애써야 하는 국민들이 참 애처롭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말이란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애매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말의 힘이 막강하다. 특히 정치판에서는 절대적 영향력을 갖는 경우가 많다. 말로 국민을 설득하고, 감동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는 말이다’라는 명언도 나온 모양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매우 위험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국민만 믿고 오직 국민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국민만 보고 가겠습니다.”   지극히 당연하고 멋진 말씀이다. 희망의 새 시대가 활짝 열릴 것만 같다. 꼭 그렇게 되기를 기원한다. 그런데….   국민? 어떤 국민?   이렇게 반문하면 말문이 탁 막히고 만다. 대체 어느 국민의 뜻에 따르고, 어떤 국민을 보고 가겠다는 말씀인가? 국민의 성향은 실로 다양하고, 저마다 생각이나 처한 상황도 다르다. 실제로 대통령과 생각이 다른 국민이 절반을 넘는다. 정치가들의 말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그다지 믿을 만하지 않다.   그런가 하면 많은 사람이 끄덕이는 말이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아무리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세상이라 해도 아닌 것은 아니다. 승자는 무조건 절대적으로 옳고, 패자는 완전히 그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人)의 말(言)이 곧 믿음(信)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그걸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남아일언중천금’이라는 말을 믿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더구나 지금처럼 말의 가치가 형편 없이 떨어지고 있는 세상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의 힘을 믿어야 한다. 믿을 수밖에 없다. 진심 어린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국민을 하나로 모아 세상을 변화시키고, 전 세계 지도자들을 숙연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그런 막강한 힘을 발휘한 명언이 많다.   그런 명언들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온 말들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충분히 경청하고, 깊이 생각한 뒤에 나오는… 그래서 인간의 입은 하나인데 귀는 두 개인 것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시론 정치인 우크라이나 대통령 한국 국회 세계 지도자들

2022-04-27

[시론] 우크라이나 지원의 ‘딜레마’

지난 1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한국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화상연설을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참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에서 “민간인들의 생활 기반이 파괴됐다. 군사 시설이 아닌 대학, 기차역, 공항 등 시설들을 러시아군이 공격해 왔다”며 “지금까지 우리(우크라이나) 측의 집계로는 교육기관만 900곳 이상 파괴됐고 수많은 병원도 파괴됐다”고 참상을 고발했다.     또한 그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옥죄고, 우크라이나를 분리시키고자 한다”며 “우크라이나 민족, 문화, 언어 등을 없애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러시아군에 장기간 포위된 남부 요충지 마리우폴은 최악의 상황이라며 마리우폴 시민들 최소한 몇 만 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국과 관련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한국은 1950년대에 전쟁을 한번 겪었고, 수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결국은 이겨냈다. 당시 국제사회가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러시아 배, 러시아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군사 장비가 한국에 있다”며 “우리가 러시아에 맞설 수 있도록  도와주면 감사하겠다”고 부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모든 나라가 독립을 유지할 권리가 있고 모든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해 죽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군사적 지원을 강하게 요청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초 군사·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전 세계에 발송했다. 당시 소총과 대전차 미사일 등 살상 무기가 지원 요청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살상 무기 지원과 관련해 제한되는 측면이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다. 국방부는 살상 무기를 제외하고 군수 및 의료 물자를 우크라이나에 지난달 지원했다고 밝혔다.   국제 사회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최적의 협력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한국이 6.25전쟁으로 국가운명이 풍전등화였을 때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했기에 우크라니아의 요청을 쉽게 지나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분단국가로 언제 어떻게 예기치 않은 북한도발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기로에 서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는 북한이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핵실험까지 운운하는 상황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원 요청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간 평화협상도 몇 차례 있었지만 진정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우크라이나 내에서 러시아군이 민간인 집단학살 등 전쟁 범죄를 자행하고 있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전해오는 소식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대규모 결전이 임박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급박한 상황에 한국도 국제 사회와의 공조가 불가피하다. 분단국가로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분쟁을 냉철하게 점검하고 우방국가와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가져올 또 다른 분쟁에 휩싸이지 않도록 국제적인 공조와 협력이 필요한 때다.  박철웅 / 일사회 회장시론 우크라이나 딜레마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 침공 우크라이나 민족

2022-04-12

[삶의 뜨락에서] 전쟁이 가져다준 것

“사랑에 빠지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게 되고, 전쟁에 휘말리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크리스틴 한나의 소설 ‘나이팅게일’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나이팅게일’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점령으로 피폐해진 프랑스에서 이상, 열정, 상황으로 분리된 두 자매가 생존, 사랑, 자유를 향해 위험한 길을 걸어가는, 자식들과 그리고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지켜내기 위한 담대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선택과 결정을 해야만 했던 여인들의 삶에 대한 가슴 아픈 전쟁소설이다.     1939년 프랑스 조용한 카리보 마을에서 전선으로 향하는 남편 앙투안과 작별한 비안느모리악, 그녀는 나치가 프랑스를 침범하리라 믿지 않지만… 트럭과 탱크에 탄 병사들이 행군해 들어오고, 하늘을 메운 나치 비행기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폭탄을 떨어뜨린다. 독일군 대위가 비안느의 집을 숙소로 정하자, 비안느와 딸은 생존을 위해 적과 살아간다. 음식, 돈, 희망도 없이 삶의 위험이 더해지자 비안느는 전쟁의 공포와 비참함에 맞서 점차 강인한 엄마이자 여인으로 변모한다. 아내이면서 엄마인 내가 그 당시에 살았었다면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감수할 수 있었을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아이의 목숨까지 내걸 수 있었을까?     독립심이 강하고 자유롭고 반항적인 성향의 18세의 동생 이사벨은 나치의 파리 점령이 시작될 때 레지스탕스 가에탕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용감하게 레지스탕스에 가입한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변혁적인 사건이자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세계에 가장 위험한 대결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초기, 블라디미르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피신 제안을 받았다. 그는 “내게 필요한 건 대피 수단이 아니라 탄약”이라는 멋진 응수로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행복해졌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이 많은 세상에서 아주 보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남기로 한 그는 양복과 넥타이 대신 올리버 재킷과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키이우 거리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울 것을 맹세한 비디오를 게시하며 국민에게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곁엔 아내 올레나 젤린스키도 함께 있었다. 젤린스키 여사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공개서한에서 러시아를 비난하며 “우크라이나 민간인에 대한 대량 학살”을 알렸다. 대통령에 당선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정치 경험이 전무한 코미디언 출신의 블라디미르 젤린스키는 영국의 처칠에 견줄만한 진정성 있는 전쟁 지도자로 떠올랐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집과 가족을 잃고 얼어붙은 추운 길가에 서 있는 수많은 피난민들, 빈털터리로 집을 나왔다며 아이를 품에 안고 우는 남자, 뮌헨의 안전한 장소로 딸을 피신시킨 후, 혼자 우크라이나로 돌아와 저항에 가담할 계획이라고 말하는 여배우, 그녀는 만일 러시아 침공이 없었다면 지금쯤 키이우에 있는 극장에서 호머의 오디세이 무대에 서 있을 것이라 한다. 볼쇼이 발레단의 슈퍼 발레리나 올가 스미르노바는 “내가 러시아를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유명한 모스크바 발레단을 떠났다.     전쟁으로 인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삶의 밑바닥은 어디까지일까? “사랑에 빠지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게 되고, 전쟁에 휘말리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춘희 / 시인삶의 뜨락에서 전쟁 전쟁 지도자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 민간인

2022-03-28

[뉴욕의 맛과 멋] 캡틴 대한민국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써 한 달이 되었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전쟁은 인류 최대의 난제다. 그 사이에서 무고하게 처절한 희생을 당하는 건 국민 뿐이다. 정치에 문외한인 나는 루스벨트 대통령 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복잡한 국제 관계는 잘 모른다. 그러나 지금 세계의 시선을 집중적으로 받는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젤린스키를 보면서 한 국가 지도자의 의무와 책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러시아 침공 5일째인 3월 1일, 젤린스키 대통령이 유럽의회의 대면 인터뷰에서 “삶이 죽음을 이길 것이며 빛이 어둠을 이길 것”이라고 한 연설은 인상적이었다. 타임은 그런 그를 두고 찰리 채플린이 윈스턴 처칠로 변모한 것 같다고 평가했는데, 젤린스키 대통령이 유명 코미디언 출신이란 사실이 흥미로운 부분이긴 하다. 실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대부분의 세계 여론은 하루 이틀 안에 수도 키이우가 러시아에 함락될 것이라 예상했다. 나 역시도 고래와 새우싸움이라고 보고 있었으니.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아직도 끈질기게 버티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항공편 제공을 시사하며 망명을 권하자, 군복 입은 젤린스키 대통령은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도망갈 항공편이 아니라 더 많은 탄약입니다” 라면서 각료들과 함께 수도에 남아 끝까지 싸우겠다고 단호하게 대처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우크라이나 국민은 물론 전 세계 모두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13만명이 자원입대했고, 세계 곳곳에 나가 있던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이 속속 귀국하고 있다고 한다. 용감한 지도자에겐 용감한 국민이 있는 것 같다.     최근 대통령을 새로 뽑은 우리나라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대선 전까지의 양상은 완전 오리무중이었다. 누가 뽑힐지 마지막 순간까지 박빙의 승부였다. 혹자는 윤석열 후보가 0.73%, 24만 표차로 승리한 사실을 두고 그 24만표를 80대가 이루어낸 기적이라고도 한다. 그 많은 여론조사에서 80대는 노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적을 이루어낸 1943~1938년생은 6·25 때 초등학생, 4·19 때 대학생들이었으며 5·16 때 군 복무를 학보로 18개월 단기복무를 했던 00 군번 들이었고, 예비군과 민방위에도 초창기에 참여한 세대. 새마을운동에도 앞장섰고, 대졸 출신들이 서독 광부로 지원했으며 중동 건설 현장에서 땀 흘리며 외화를 벌어 애국한 세대라는 것이다. 가난한 엘리트로 토요일도 일요일도 야근한그들 80대의 노고로 한국의 경제가 오늘 같은 장족의 발전 기틀을 마련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SKY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3가지 조건인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경제력의 주인공이 그들이라고 한다.   나는 다시는 우리가 사는 이 지구 어디에서도 몸서리치는 전쟁을 보고 싶지 않다. 하루빨리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팬데믹으로 깊이 상처 입은 지구인들이 제발 편안해지면 좋겠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진실로 나라다운 나라, 지도자다운 지도자, 국민다운 국민을 볼 수 있었다는 감동은 간직할 것이다. 소셜미디어에선 이런 젤린스키 대통령에게 ‘캡틴 우크라이나’라며 칭송이 쏟아지고 있다. 그를 보면서 ‘캡틴 대한민국’의 출현을 기다리는 건 비단 나 뿐만의 기대는 아닐 것이다. 이영주 / 수필가뉴욕의 맛과 멋 대한민국 캡틴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 국민 우크라이나 전쟁

2022-03-25

[폴리 토크] 우크라 전쟁과 푸틴의 선택

2013년~2014년 버락 오바마 전 정부는 친러 국가였던 우크라이나 쿠데타에 관여했다. 이를 마이단 혁명이라 부른다. 관련 인물들은 토니 블링컨, 제이크 설리번, 빅토리아 눌런드, 수전 라이스 등이다. 이들은 현 바이든 정부에서 백악관과 국무부 중책을 맡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정부 시절 우크라이나 관련 총책임자였다. 우크라이나는 ‘완충국(buffer state)’이었다. 강대국들 사이에 위치해 긴장 관계를 완화해주는 역할을 했다. 여기서 어느 한쪽으로 확 틀면 언제든 재앙이 닥칠 수 있는 운명이었다. 1994년에 세계 3위에 해당하는 1700개 이상 핵무기 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큰 실수를 범했다. 미국의 안전보장을 조건으로 핵을 모두 포기했다. 그 선택은 재앙으로 닥쳤다.     2013년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와 무역협상을 제안했다. 사실상 EU에 가입하라는 손짓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분노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에게 최후통첩했다. 150억 달러 원조비를 받든지,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할 각오를 하라고 했다. EU와 협상은 즉각 중단됐다. 그 뒤 오바마 정부가 개입하면서 마이단 혁명이 일어났다. 친미 혹은 반러 우크라이나 새 정부 수립이 목표였다.     분노한 푸틴은 크림반도를 침공해 러시아 땅으로 합병했다. 당시 부패 혐의로 수사받던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 부리스마는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조 바이든의 아들 헌터를 이사로 영입했다. 푸틴 심기를 또 불편하게 만든 일이었다. 그 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인 돈바스 영토 절반을 점령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전에 나서는 데 ‘뇌관’이 됐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트럼프-러시아 내통 조작 스캔들이다. 푸틴이 트럼프를 백악관에 앉히려는 이유가 우크라이나 관련 경제 제재를 해제하기 위해서라는 황당무계한 스캔들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캠페인이 2016년에 꾸며낸 것으로 존 듀럼 특검 수사를 통해 밝혀졌다.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와 우크라이나계 미국인도 조작에 가담했다. 우크라이나의 주미대사는 트럼프와 러시아가 깊숙한 관계라는 칼럼을 주류 언론 곳곳에 기고했다.     2019년 우크라이나가 미국 중앙정치에서 빅 이슈가 됐다. 백악관 관리인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알렉산더 빈드먼과 그의 동료이자 ‘바이든맨’으로 알려진 CIA 분석가 에릭 샤라멜라가 등장한다. 이들은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내 바이든 가문의 부패 행위에 대한 정보를 물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민주당 진영에선 난리가 났다. 트럼프가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부패 혐의를 알아보려는 것은 정적 수사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이 장악한 연방하원은 즉각 탄핵안을 가결했다. 언론도 맞장구쳤다. 민주당 진영은 우크라이나에서의 부패 행위가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 탄핵카드로 먼저 선수친 것이다.     2020년 대선 때도 민주당은 같은 카드를 꺼냈다. 러시아가 트럼프 재선을 위해 대선에 개입한다는, 똑같은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     헌터 바이든의 노트북 스캔들이 대선 직전 터졌을 때 주류언론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2015년 11월 2일 헌터 이메일에서 부리스마 이사가 헌터에게 자사 수사를 중단케 힘을 써 달라는 요청 내용이 나왔음에도 주류언론은 보도하지 않았다. 빅테크도 노트북 스캔들은 모두 ‘잘못된 정보’라며 관련 뉴스를 일제히 삭제했다. 조 바이든은 러시아가 아들 노트북을 해킹했다고 주장했다. 주류언론도 합창했다. 그런데 헌터 이메일은 모두 진위로 밝혀졌다. 뉴욕타임스도 인정했다.       바이든은 백악관 입성 직후부터 우크라이나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바이든과 블링컨 국무장관이 이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도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 방문 중에 같은 말을 했다. 푸틴 인내심의 임계점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운명을 지구 반 바퀴 떨어져 있는 미국 민주당에 맡긴 셈이었다. 전쟁의 비극은 거기서 시작됐다.       원용석 / 사회부 부장폴리 토크 푸틴 우크라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 쿠데타 우크라이나 에너지

2022-03-20

[시론]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주목하는 까닭

“우리 여기 있다.” “죽는 것이 두렵지만 대통령으로 그럴 권리는 없다.” “우리는 산, 들, 바닷가, 길거리에서도 싸울 것이다.” 항쟁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외친 자국민의 전의와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는 절절한 말들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72년 전 6.25 남침과 흡사하다. 소련의 지원으로 적화통일을 하려던 북한, 소련연방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러시아의 푸틴, 러시아와 동맹인 중국, 그리고 침략자의 퇴치를 적극 지원한 해리 트루먼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있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줄곧 침공을 준비했다. 경제제재를 피하려고 달러와 유로화는 줄이고 위안화, 엔화, 금 보유를 늘려 외환 보유고 6430억 달러를 마련했다.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에 20만 병력을 집결하면서 디도스 공격과 악성코드를 심는 사이버 공격을 먼저 감행했다. 국민에게는 신나치를 응징하는 특별 군사작전이라고 알렸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참전 대신에 혹독한 경제 제재를 택했다. 루블화는 폭락하고 주식시장은 닫혔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대외 자산은 동결되고 국제금융통신망(SWIFT)에서 퇴출됐다. 많은 기업들이 자진해서 러시아를 떠났다. 러시아는 자국민의 입을 막는 무시무시한 ‘가짜뉴스법’을 제정했고, 테크회사들은 러시아가 퍼뜨리는 허위정보 차단을 위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제한했다. 유엔은 지난 2일 ‘침공 규탄과 철군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 방어에 집중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 러시아를 퇴치할 첨단 무기 공급을 필사적으로 서두르고 있다. 휴대용 스팅어 대공미사일,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지대공미사일 등이 대표적이다. 연방 의회는 백악관이 요청한 64억 달러의 두 배인 136억 달러 지원금을 승인했다. 바이든은 미군 10만 명을 나토에 파병했다.       한국은 광복 후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좌익과 반대하는 우익의 충돌로 혼란스러웠다. 소련과 북한은 1948년 1월 유엔 임시 한국위원단의 북한 입국을 막았다. 남한 단독으로 1948년 8월 정부를 수립하고 유엔의 승인을 받았다. 1949년 봄부터 미군 철수가 시작됐다. 1950년 1월 미국 전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미국 극동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하는 애치슨 라인’을 발표했다. 이는 소련과 북한의 남침 계획에 힘이 됐다.     한국전 발발 후 미국은 극적으로 움직였다. 남침한 6월 25일 오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청했다. 마침 소련이 불참해서 ‘38선 북으로 퇴각하라’는 구속력 있는 결의문이 채택됐다. 미국은 이틀 후에 참전을 결정했고 유엔이 다음날 이를 인가했다. 7월 7일 유엔군 파병이 합의됐고 다음날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유엔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6.25는 역사상 가장 폭넓은 지원을 받은 전쟁이다. 16개국의 참전, 39개국의 물자지원, 8개국의 의료진 파견이 있었다. 60명 이상의 미국 육해공군 장성이 참전했다. 월턴 워커 중장은 서울서 지프 사고로 사망했고, 중공군 참전 후에 한반도 전체를 민주화하려고 북진을 고집한 맥아더 장군은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파면됐다.     속전속결을 계획했던 러시아는 점점 잔인해지고 전쟁은 장기전이 될 태세다. 세계 각지의 의용군과 용병의 참전으로 확전 위험도 있다. 전쟁은 엄청난 비극이다. 러시아와 북한 침공은 민주주의가 피의 대가임을 깨닫게 한다. 이것이 우리가 계속 우크라이나 전쟁에 귀를 기울이고 적극 지원해야 하는 이유다.      정 레지나 / LA독자시론 우크라이나 까닭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 중앙은행

2022-03-15

[프리즘]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가 23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23일 이전만 해도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놓고 일반적인 관측과 연방 정부의 관측이 엇갈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행보에 지속해서 경고를 보내고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한 상황에서도 전문가들은 대체로 러시아의 군사적 움직임을 일종의 협상용 카드로 봤다. 뉴욕타임스의 분석은 이런 시각을 잘 보여줬다. 뉴욕타임스는 러시아의 군사적 움직임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과 핵무기나 중화력 군사무기의 폴란드 배치를 절대 반대한다는 안전보장 요구를 서방 국가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협상용 카드라는 것이다.   반면, 백악관은 일관되게 러시아가 군사 행동에 돌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군이 일부 복귀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도 며칠 내로 침공이 가능하다고 발표했다. 침공 전날엔 전면전이 가능할 정도로 군사력이 증강됐다고 밝혔다. 이 부분은 백악관이 맞았다.   러시아와 미국·서방, 우크라이나의 입장은 분명하다. 나폴레옹부터 나치까지 서유럽에 들어선 맹주는 늘 러시아로 몰려갔고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그 관문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맹주고 나토는 그 토대다. 폴란드에 이어 우크라이나까지 나토에 가입하면 문 앞에 맹주가 버티고 있는 셈이다. 옛 소련이 쿠바에 핵을 배치하려 했을 때의 미국과 비슷한 심정일 수 있다. 더군다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은 연방 해체로 종이호랑이가 된 러시아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는 이미지다.     미국과 서방은 경제 영토를 넓히고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는다는 면에서는 러시아와 협력하지만, 푸틴의 영향력 확장은 현상을 유지하며 제어해야 한다. 그래야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는 데 힘을 모을 수 있다.   소련 연방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존재 자체가 위협인 러시아의 힘을 나토 가입으로 누르려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결론도 나지 않은 일, 이를테면 “나토 사무총장과 통화하고 6월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논의했다” 같은 것도 트위터에 올렸다. 나토 가입은 서방보다는 우크라이나가 더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아시아로 회귀해 중국 목죄기에 나선 지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많은 나라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러시아는 20일 만에 크림반도를 합병한 것처럼 속전속결 뒤 협상을 모색하려는 모양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게릴라전을 택하면 문제는 복잡하다.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게릴라전의 깊은 수렁을 경험했다. 미국은 중국 제어에도 힘이 부치는 상황이어서 2개의 전선을 만들고 싶지 않겠지만 “나, 아직 죽지 않았다”고 외치는 러시아의 기세를 방치할 수만도 없을 것이다.   벌써 신냉전 얘기가 나오지만 세상은 변했다. 미국도 나토도 경제 제재만 외칠 뿐 군사적 대응에는 멈칫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코로나19 대응에 푼 거대한 유동성 대처에도 벅차다. 다시 막대한 전비를 쓸 여력이 없다. 더구나 미국은 몇 달 전에야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했다. 예전의 냉전처럼 스크럼을 짜기에는 내 코가 석 자여서 전쟁에 발을 담그고 싶은 나라는 없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먼 땅의 이야기가 아니다. 냉전 해체 이후 전 세계가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인 탓에 자원 부국인 우크라이나가 공급하던 네온, 철광석, 티타늄 등의 공급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유가는 벌써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유가 상승은 물가 인상으로 직결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 인플레이션이 10%에 이를 것이라는 CNN의 보도는 결과적으로 푸틴이 노린 약한 고리일지도 모르겠다.  안유회 / 사회부장·국장프리즘 푸틴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침공 서방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대통령

202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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